상화의 시

가장 비통(悲痛)한 기욕(祈慾)

- 간도 이민(間島 移民)을 보고
아, 가도다 가도다 쫓아 가도다.
잊음 속에 있는 간도(間島)와 요동(遼東)벌로
주린 목숨 움켜쥐고 쫓아 가도다.
자갈을 밥으로 햇채를 마셔도
마구나 가졌더라면 단잠은 얽맬 것을-
사람을 만든 검아 하루 일찍
차라리 주린 목숨 빼앗아 가거라!
아, 사노라 사노라 취해 사노라.
자포(自暴) 속에 있는 서울과 시골로
멍든 목숨 행여 갈까 취해 사노라.
어둔 밤 말없는 돌을 안고서
피울음을 울었더라면 설움은 풀릴 것을-
사람을 만든 검아 하루 일찍
차라리 취한 목숨 죽여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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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해석

1925년 『개벽』지에 발표된 「가장 비통한 기욕(祈慾)」은 일제의 수탈로 고향을 떠나 간도, 요동벌 등으로 새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야 했던 우리 민족의 당시 실상을 뜨겁게 노래하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나라를 빼앗긴 조국의 아픔을 그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비음(緋音)」등과 함께 일제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지를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떠올리고 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간도 이민을 보고」라는 부제를 달고, 한탄으로 시작되는 이 시는 뿌리 뽑히고 거덜난 사람들(우리 민족)에 대한 애달픈 연민과 절박한 심정을 직정적(直情的)으로 쏟아내면서, 비통한 욕망과 고조된 민족의식을 처절하게 극화한다. ‘아, 가도다 가도다 쫓겨 가도다’라는 절규, 그것도 ‘잊음 속에 있는’ 땅으로 ‘주린 목숨 움켜쥐고’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비통(悲痛)을 감히 어디에다 견줄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그 이면에는 ‘자갈’을 주식(밥)처럼 먹고 ‘햇채(수채)’를 마시더라도 ‘마구(마구간)나 가졌으면 단잠을 얽맬 것을’이라는 극도의 박탈감과 우리 땅에 대한 깊은 사랑은 ‘조국애에의 농도 짙은 통한(痛恨)’에 다름 아니며, 하루라도 빨리 ‘주린 목숨을 빼앗아 가거라!’라는 비명은 극한 상황에 이른 절규의 절정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 사노라 사노라 취해 사노라’로 시작, 첫째 연과 뉘앙스가 다른 짝을 이루는 메시지들을 담고 있는 둘째 연은 ‘취해’ ‘자포’ ‘멍든 목숨’ ‘어둔 밤’ ‘말없는 돌’ ‘피울음’ ‘설움’ 등의 어지럽고 어둡고 무거운 어휘들로 미만해 있다. 취하지 않고 살 수 없을 지경인 이 비극적 상황은 조국(서울과 시골)을 등진 채 가고 싶은 마음마저 돌려세워야 하고, 피울음마저 뛰어넘어야 하는 설움의 도가니이며, 급기야 죽는 게 낫다는 자학(自虐)에까지 이르게 한다.

피압박 민족의 뿌리 뽑힌 삶을 격정적으로 노래하는 이 시는 일제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지를 극대화한 극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감정과잉과 직정적 영탄(詠嘆)에 기울어져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해설 : 이태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