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의 시

도쿄에서

- 1922년 가을
오늘이 다 되도록 일본(日本)의
서울을 헤매어도
나의 꿈은 문둥이 살기같은
조선(朝鮮)의 땅을 밟고 돈다.

예쁜 인형(人形)들이 노는
이 도회(都會)의 호사(豪奢)로운
거리에서
나는 안 잊히는 조선의 하늘이
그리워 애달픈 마음에 노래만
부르노라.

「동경(東京)」의 밤이 밝기는
낮이다-그러나 내게 무엇이랴!
나의 기억(記憶)은 자연(自然)이
준 등불 해금강(海金剛)의 달을
새로이 솟친다.
색채(色彩)의 음향(音響)이 생활(生活)의
화려(華麗)로운 아롱사(紗)를 짜는-
예쁜 일본(日本)의 서울에서도 나는
암멸(暗滅)을 서럽게- 달게 꿈꾸노라.

거룩한 단순(單純)의 상징체(象徵體)인
흰옷 그 너머 사는 맑은 네맘에
숯불에 손 데인 어린 아기의 쓰라림이
숨은 줄을 뉘라서 아랴!

벽옥(碧玉)의 하늘은 오직 네게서만
볼 은총(恩寵)받았던 조선(朝鮮)의 하늘아
눈물도 땅속에 묻고 한숨의 구름만이
흐르는 네 얼굴이 보고 싶다.

아 예쁘게 잘 사는 「동경(東京)」의
밝은 웃음 속을 온 데로 헤매나
내 눈은 어둠 속에서 별과 함께
우는 흐린 호롱불을 넋없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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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해석

이 시는 1922년 이상화가 프랑스 유학을 위해 동경의 <아테네 프랑세>에서 불어를 배우고 있던 시절에 쓴 작품이다. 「빼앗긴 들에는 봄이 오는가」와 「역천」, 그리고 이 작품을 대표작으로 들고 있을 정도로 이상화는 이 시에 큰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그것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이 시가 자신의 문학적 전환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만21세의 청년 이상화에게 동경 체험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낙후된 전통사회의 경험 밖에 없었던 그에게 근대화된 동경의 호사롭고 화려한 밤은 놀라움 그 자체였을 터. 그 놀라움은 낭만과 감상의 늪에 빠져 있던 자신의 문학적 방향을 전폭적으로 수정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8연 16행으로 되어 있다. 두 연이 하나의 의미 단락을 이루고 있는데 시의 구성 측면에서 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이 된다. 1-2연과 3-4연이 첫 번째 단락이고, 5연-6연이 두 번째, 7-8연이 세 번째 단락이다. 첫 번째 단락에서 우리는 오기에 가까운 식민지 청년의 자존심을 읽을 수 있다. “예쁜 인형들이 노는” 호사롭고 화려한 동경의 거리에서 “문둥이 살기” 같은 조선을 그리워한다는 것. 대낮처럼 밝은 동경의 조명을 보며 자연이 준 등불인 해금강의 달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한낱 오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화자도 알기에 “암멸(暗滅)을 <서럽게― 달게>” 꿈꿀 수밖에 없는 것. 두 번째 단락에서 화자는 진흙과 짚풀로 얽맨 움”집에서 살아가야 하는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떠올리며 거기에서 벗어날 길은 없겠느냐고 “부처같이 벙어리로” 사는 동포에게 묻는다. 왜 부처 같고 벙어리인가 하면, “화려로운 아롱사를 짜는― 예쁜 일본”에 대비되는 “거룩한 단순의 상징체의 흰옷”에 담긴 마음이 너무 맑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맑은 마음에 “숯불에 손 데인 어린 아기의 쓰라림”이 숨어 있음을 누가 알겠느냐고 묻는다.

세 번째 단락은 결구 부분이다. 2연에서 화자가 그리워했던 “안 잊히는 조선의 하늘”은 하늘의 은총을 받았던 “벽옥의 하늘”이었다. 지금 조선의 하늘은 눈물과 한숨으로 뒤덮여 있다. 그것들이 말끔히 가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화자는 소망한다. 그러나 동경의 밝은 웃음 속에 보는 조국의 현실은 “어둠 속에서 별과 함께 우는 흐린 호롱불”의 처지. 이 아픈 각성을 통해 이상화는 코페르니쿠적인 문학적 선회를 이루게 된다. <백조> 동인의 주관적 감정의 세계에서 벗어나 민족적 입장에서 저항 시편을 쏟아내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이상화 문학의 전환점일 뿐 아니라, <신경향파>라는 1920년대 한국시사의 한 마디를 형성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 장옥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