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의 시

이해를 보내는 노래 - 1924년 작

「가뭄이 들고 큰물이 지고 불이 나고 목숨이 많이 죽은 올해이다. 조선(朝鮮)사람아 금강산(金剛山)에 불이 났다. 이 한 말이 얼마나 깊은 묵시(默示)인가. 몸서리 치이는 말이 아니냐. 오 하느님- 사람의 약(弱)한 마음이 만든 도깨비가 아니라 누리에게 힘을 주는 자연(自然)의 영정(靈精)인 하나뿐인 사람의 예지(叡智)-를 불러 말하노니. 잘못 짐작을 갖지 말고 바로 보아라.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조선(朝鮮)사람의 가슴마다에 숨어사는 모든 하느님들아!」
하느님! 나는 당신께 돌려보냅니다.
속썩은 한숨과 피 젖은 눈물로 이 해를 싸서
웃고 받을지 울고 받을지 모르는 당신께 돌려보냅니다.
당신이 보낸 이 해는 목마르던 나를 물에 빠뜨려 죽이려다가
누더기로 겨우 가린 헐벗은 몸을 태우려도 하였고
주리고 주려서 사람끼리 원망타가 굶어 죽고만 이 해를 돌려보냅니다.
하느님! 나는 당신께 여쭈려합니다.
땅에 업딜어 하늘을 우러러 창자 비-ㄴ소리로
밉게 들을지 섧게 들을지 모르는 당신께 여쭈려합니다.
당신 보낸 이 해는 우리에게「노아의 홍수(洪水)」를 갖고 왔다가
그날의 「유황(硫黃)불」은 사람도 만들 수 있다 태워 보였으나
주리고 주려도 우리들이 못 깨쳤다 굶어 죽였는가 여쭈려합니다.
아 하느님!
이 해를 받으시고 오는 새해 아침부터는 벼락을 내려주십시오.
악(惡)도 선(善)보담 더 착할 때 있음을 아옵든지 모르면 죽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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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해석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민족에게 시련은 절망이 아니다. 시련은 또 다른 힘, 그것은 꿈을 현실로 추동하는 에너지이다. 이상화는 그 힘을 믿었다. 그래서 “새해 아침부터 벼락을 내려줍쇼”하고 모질게 소원을 빌었다. 이 반어적 기도가 이 시의 핵심이다. 그 의미는 이 시의 배경에 놓여있다.

이상화가 한숨과 눈물로 싸서 하느님에게 돌려보내겠다고 한 해는 을축년(1925년)이다. 을축년은 유례없이 네 차례의 대홍수가 있었다. 조선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네 차례의 홍수로 사망자 647명, 가옥유실 6363호, 가옥붕괴 1만 7045호, 가옥 침수 4만 6813호에 이르렀고 유실된 논밭이 약 10만 단보였다. 이 피해액 1억 300만원은 총독부 예산의 58%에 맞먹는다고 한다. 이런 대홍수 천재에다가 금강산 산불의 인재가 있었다. 금강산 산불은 대홍수에 비하여 피해가 사소하다고 하더라도 식민지 조선인에게 대홍수에 못지않게 정신적으로 큰 재난의 상징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천재의 대홍수와 인재의 금강산 산불을 배경으로 조선인이 당면한 현실적 재앙과 정신적 재난을 한 쌍의 구조로 하여 '주리고 주려서 사람끼리 원망타가 굶어 죽고' 그렇게 되어가는 식민지 조선의 기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문제 제기와 그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은 이원적이다. 표면적으로 을축년 천재와 인재로 인한 기아를 하느님에 따지고 원망하는 것 같지만 그 내면에는 곡진한 기원이 있다. 을축년 대홍수는 ‘노아의 홍수’로 금강산 산불은 ‘유황불’에 비유한 것은 천재와 인재를 하느님에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하는 간절한 구원의 기도이다. 노아의 홍수와 유황불은 인간의 죄를 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을 씻어내고 불살라 새로운 깨우침을 주는 상징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식민지 조선인들이 대홍수와 금강산 산불이 주는 시련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천재와 인재가 가져온 시련의 참 의미는 식민지 조선의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는 것, 그것은 지금 당면한 기아로부터 탈주이다. 물론 그것은 궁극적으로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상화가 안타까워하는 점은 바로 조선인들이 이 점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 민족 모든 이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하느님이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 보다 현실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상화의 말로 한다면 하느님은 “누리에게 힘을 주는 예지다.” 이에 따른다면 하느님은 당대 절망적 식민지 현실에서 민족의 꿈을 현실로 가능하게 하는 민족의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벼락’은 저주나 원망이 아니라 대홍수와 금강산 산불의 시련의 본질을 미처 알지 못하는 조선인들이 식민지 현실을 자각하는 ‘깨침’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이상화는 조선인들은 시련을 통해서 민족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여기서 ‘악도 선보담 더 착할 때 있음을 아옵든지 모르면 죽으리다’하는 극단적인 간구와 단호한 선언을 하게 된다. 이것은 이 시의 절정이자 동시에 결말로 시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상화는 이렇게 감히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민족의식을 조선인의 가슴속에서 불러내어 식민지 현실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 예지로 식민지 현실을 직시하고 극복하고자 했다.)

해설 : 조두섭(대구대 교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