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의 시

시인(詩人)에게 - 1925년 작

한 편(篇)의 시(詩)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世界) 하나를 낳아야 할 줄 깨칠 그때라야
시인(詩人)아 너의 존재(存在)가
비로소 우주(宇宙)에게 없지 못할 너로 알려질 것이다.
가뭄 든 논끼에는 청개구리의 울음이 있어야 하듯-

새 세계(世界)란 속에서도
마음과 몸이 갈려 사는 줄, 풍류만 나와보아라
시인(詩人)아 너의 목숨은
진저리나는 절름발이 노릇을 아직도 하는 것이다.
언제든지 일식(日飾)된 해가 돋으면 뭣하며 진들 어떠랴

시인(詩人)아 너의 영광(榮光)은
미친개 꼬리도 밟는 어린애의 짬 없는 그 마음이 되어
밤이라도 낮이라도
새 세계(世界)를 낳으려 소댄 자국이 시(詩)가 될 때에- 있다.
촛불로 날아들어 죽어도 아름다운 나비를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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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해석

작품「시인(詩人)에게」는 1926년 4월 『개벽』68호에 「통곡(慟哭)」과 함께 발표되었다. 1925년과 1926년은 상화 선생께서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벌인 시기인데, 그런 사실을 반영하듯 시인의 뜨거운 시정신이 배어있다.
‘시인에게’의 격조사 ‘~에게’는 시인인 자신을 향한 것일 수도 있고, 당대의 시인들을 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당대의 시인에게 전하고자 한 것으로 보기 보다는, 자신을 향한 다짐을 토로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시를 쓰는 그 어느 시대의 시인들이라도 새겨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인이 어떤 정신과 태도로 시를 써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3연으로 짜여졌다. 시인의 존재, 시인의 목숨, 시인의 영광이 각 연의 중심이다.

첫째 연, 시인의 존재는, 한편의 시가 새로운 세계 하나를 낳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 하나를 창조한다는 의식도 없이 시 쓰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며, 결국 그런 의식을 가지지 못하면 시인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가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인의 존재뿐만 아니라 시의 존재 이유까지 포함시킨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둘째 연, 시인의 목숨은, 새 세계를 창조한다는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시를 써야 시인으로서의 목숨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를 쓰는 것에 대한 경고다. 시가 관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의식 없이 풍류만 쏟아놓으면 절대 온전한 시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연, 시인의 영광은 밤낮 가리지 않고 창작의 열정을 불태워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의 영광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를 위해 헤매는 고뇌와 고통이 시가 될 때에 생긴다는 것이다. 고통 없는 영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촛불로 날아들어 죽어도 아름다운 나비를 보아라.'는 구절로 마무리 하여, 그의 시정신이 얼마나 뜨거웠던가를 강렬하게 인식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한편의 시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과, 마음과 몸이 합일되는 작품을 써야 시인으로서의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 세계를 창조하려는 의지가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시인의 영광이 생긴다는 것을 한 편의 시로 설파한 것이다.

모든 시인들이 옷깃을 여미고 읽어야 할 시다. 꼭 시인에게만도 아니다. 삶을 경영하는 모든 이에게 꼭 같은 의미로 전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오래 이상화 시인을 기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작품이 바로 이 같은 뜨거운 정신에서 창조된 것임을 의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해설 : 문무학(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