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의 시

통곡(慟哭) - 1925년 작

하늘을 우러러
울기는 하여도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달파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진다.
해야 웃지 마라.
달도 뜨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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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해석

이 시는 하늘과 땅의 대립구조로 짜여 있다. 하늘이 우러름과 웃음과 광명의 세계라면 땅은 애달픔과 울음과 질곡의 세계이다. 작중 화자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울고 있다. 아니 통곡하고 있다. 통곡의 이유는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 때문이며, 이 땅이 애달프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나라를 빼앗겨 주체적 삶을 살 수 없는 일제 강점기의 억압 때문이며, 국권상실의 비통함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상화는 일제 강점기를 아프게 노래한 저항시인이고 1926년 『개벽』68호에 발표한「통곡」또한 식민지 시대의 암울함을 직설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저항시라면 저항시라 부를 수도 있겠다. 하늘을 그리워하지 않고 이 땅을 걱정하는 화자의 태도에서 우리는 저항시의 요체라고 해야 할 시인의 리얼리즘적 자세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는 당대의 문학적 수준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작품상으로는 상당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소리 높여 섧게 우는 ‘통곡’은 어른의 울음이다. 아무리 큰소리로 운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울음을 통곡이라 부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통곡의 바닥에는 한의 서사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므로 큰소리로 우는 아이들의 울음은 울부짖음이지 통곡은 아니다.

그런데「통곡」속의 화자는 어른이 아닌 어린아이이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의 애달픔을 스스로 해결하려하지 않고 하늘에 기대려는 유아적 심리상태가 그것을 말해준다. ‘흘기니’의 낱말 뜻은 ‘못마땅하게 노려보니’이다. 이 땅의 애달픔 때문에 하늘을 흘기는 일이란 어른의 태도로서는 참으로 애꿎다. 그러므로 마지막 두 행 '해야 웃지 마라/달도 뜨지 마라'는 흔히 말하듯 “식민지 시대의 억압과 치욕 속에서 이어지는 괴로운 삶을 차라리 포기하고자 하는 태도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하늘을 향한 투정으로 내게는 읽힌다.

그렇다 하더라도「통곡」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컨텍스트 없는 텍스트가 어디 있으랴. 국권이 아버지이고 조국이 어머니일 때, 부모 잃은 자식이 어찌 애어른이 있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해설 : 강현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