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의 시

서러운 해조(諧調)

하이얗던 해는
떨어지려 하야
헐떡이며
피 뭉텅이가 되다.

샛붉던 마음
늙어지려 하야
곯아지며
굼벵이 집이 되다.

하루 가운데
오는 저녁은
너그럽다는 하늘의
못 속일 멍통일러라.

일생(一生) 가운데
오는 젊음은
복스럽다는 사람의
못 감출 설움일러라.

목록으로 돌아가기

시의 해석

이 시는 시인의 작품 연보(이상규ㆍ김용락 편저《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홍익포럼 2002. 176쪽)에 따르면 1941년 4월『문장』25호에 실린 작품이다. 공식적으로는 시인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이다. 이상화가 1901년에 태어나 1943년에 작고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가 서른한 살에 쓴 시이자 시인의 작품 창작 연대로 봐서 후기 작품에 해당하는 시이다.

발표 지면도 당시 순수문학 지향의 『문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시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쉽다.「나의 침실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처럼 낭만주의 시와 계급주의 시를 오고 간 상화의 시 경향으로 볼 때 이 시는 아무래도 낭만주의 시에 가깝다. 우선 시 내용이 이를 증명한다. 시 이해도 별로 어렵지 않다. 제목의 해조(諧調)는 네이버 지식검색 사전에 의하면 1. 잘 정돈됨, 2. 즐거운 가락이라는 뜻으로 정리돼 있는데 시의 문면으로 봐서 아무래도 두 번째 듯인 ‘즐거운 가락’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 같다.

그렇다면 제목부터가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형용모순은 꾸미는 말과 꾸밈을 받는 말이 서로 어긋나지만, 그래서 표면적인 문장에서는 말이 안 되지만 소위 심층구조에서는 독자에게 깊은 시적 인상을 남기는 일종의 시적 허용의 표현 기법이다.

1연은 낮에 하얗게 빛나던 해가 저녁이 되어 떨어지려고 할 때의 붉은 모습을 그리고 있다. 2연의 '늙어지려 하'는 마음과 3연의 '오는 저녁'은 둘 다 '굼벵이 집'이 되고 '멍통(구리)'가 된다. 이 표현으로 볼 때, 시적 화자의 생각에 저녁은 부정적인 그 무엇이다.

이 시 이해에서 4연이 핵심이다. 늙음, 저녁에 대비되는 ‘젊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적 화자에게 늙음이나 저녁은 부정의 대상이지만, 반대로 젊음은 '복스럽다는 사람의/못 감출 설움'이다. 물론 여기서 설움은 일종의 역설이고 강조이다. 이 설움은 너무 기뻐서 오는 설움일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저녁과 늙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고, 젊음을 상찬하고 있다. 상화가 죽기 2년 전에 쓴 시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병들고 지친 시인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어쩌면 예감하고 쓴 시인지도 모른다.

해설 : 김용락(시인, 경북외대 교수)